에도시대 소바 집들의 성공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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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 이야기

에도시대 소바 집들의 성공과 실패

소바 포장마차들의 경쟁은 바로 만들고 바로 썰어내는 지금으로 치면 막국수 개념의 고급 소바 집도 나왔다고 합니다. 소바를 만들기까지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씻을 수 있는 공간과 유카타(浴衣)까지 마련한 츠타야(蔦屋 18세기 중반)는 당시 소바 집의 유행을 선도하는 가게였다고 해요

 

수타 제면 소바 만드는 사진 메밀가루를 물과 섞어 손으로 국수를 만드는 중입니다. 칼로 자르게 되면 완성됩니다.

 

소바 집의 대형화

무가 저택을 개조해 즐거운 분위기에서 소바를 먹는다는 콘셉트로 나중에 가서는 규모 1,600여 평으로 크게 번성, 에도시대 "소바 집" 하면 츠타야가 첫 손에 꼽힐 정도로 규모나 맛에서 뛰어났던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생각해 내지 못했던 발상으로 이 가게는 1~3대까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다른 소바 집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츠타야(蔦屋)가 위치한 주변엔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게의 기물들도 대나무를 이용한 것이 주를 이뤄 사용되었고 츠타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단 대나무 숲이라는 뜻에 야부 소바(藪そば)로 불리게 되었어요.

 

변변한 랜드마크도 없었을 당시 초행자들이 가게의 이름만으로 길을 찾기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모래언덕(스나바, 砂場)이나 대나무 숲(야부, やぶ) 같이 멀리서도 잘 보이는 지형지물이 가게의 간판역할이 되었던 거 같아요.

 

현재 야부(藪) 소바는 스나바(砂場) 사라시나(更科)와 함께 에도 3대 소바의 한 곳으로 전통 소바를 계승하고 있다 합니다 소바집에서 술을 마신 기록은 1690년 정도며 1818년에는 술집에서 소바 집까지 겸업하는 가게도 생겼다고 해요.

 

술 판매 금지

그런데 포장마차는 술 판매가 금지였던 거 같습니다 밤에만 장사를 하거나 불도 쓰지못하는 각종 규제에 걸려있는 소바 포장마차였는데요 술까지 못 팔게 한 것은 막부에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소바 포장마차는 들고 다니며 음식을 파는 방식이라 점포를 얻고 장사를 하는 곳과는 관리면으로 봤을 때 비교가 안되었기 때문에 술 판매금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해요.

 

당시 소바 집의 안주들을 살펴보면 쯔유에 사용되는 묽은 된장을 그대로 제공해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 쯔유는 간장이 없을 때라 된장을 걸러 소스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야채도 찍어 먹고 그냥 먹어도 충분히 안줏거리가 되었던 모양이에요.

 

또 안주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는 김이였다고 합니다 영업시간 내 눅눅해지지 않게 뻘건 숯이 들어있는 전용 용기까지 대동해 고소한 향기와 바삭한 식감을 살려 내는 것으로 바다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은 거 같아요.

 

된장은 그냥도 먹지만 업그레이드 버전은 묽은 상태에서 살짝 걸러 꾸덕꾸덕한 상태로 말린 후 아궁이 불에 구워내었습니다 나무 막대기나 주걱에 찰싹 붙여 불 위에 돌려가며 구운 된장, 야끼미소(焼き味噌)는 구수한 맛으로 꽤 인기 좋은 안주였다고 하네요.

 

야끼미소는 소바 집 안주뿐만 아니라 전투 중 갑옷을 입은 채 물에 밥을 말아먹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반찬 중에도 야끼 미소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가장 좋아한 반찬 중 하나였다고 해요.

 

소바카키와 술 안주

또 소바가루로 만든 소바가키(そばがき)도 좋은 안주 역할을 하면서 보통 1일 2 식이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엔 해자나 산을 인공적으로 깎아 방어선을 구축하고 성을 축조 시 노동 강도로 인해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했을 때도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메밀가루에 물만 섞어 불에 저어 익히면 완성이라 노동자들이 밥 먹을 시간도 모자랄 때 후딱 먹을 수 있는 최초의? 패스트푸드 음식이 되었던 거 같아요.

 

생선 살로 만든 가마보코(찐 어묵 かまぼこ)는 에도시대 소바 집이나 술집의 기본 안주 비슷하게 인기가 좋았다고 하며 이것도 야끼 미소와 마찬가지로 오다 노부나가의 밥상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어요.

 

현재 도미나 광어는 어묵을 만들 정도로 흔하지 않습니다만 당시엔 가마보코의 재료였다고 하는데요 상류층이 즐기는 안주로 흔한 생선보다 모양을 갖추고 찌거나 구운 가마보코가 더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을 것 같아요.

 

당시엔 참치가 가다랑어 보다 저급으로 취급받았다고 하니 아무튼 도미는 튀김으로 구이로 가마보코에 탕까지 당시 에도 사람들 모두가 좋아한 생선이 될 자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사카나 관서 쪽에서 만들어진 가마보코는 교토로 운반할 때면 부패를 막고자 소금을 많이 넣어 찐 후 이동하였고 에도 쪽은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찐 어묵이 다수였다고 하네요. 이동된 교토의 가마보코는 그냥 먹기보단 구워 먹기 쉬웠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