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줄을 묶고 채취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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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 이야기

허리에 줄을 묶고 채취한 김

먹는 김을 공부하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를 보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김은 신라시대부터 먹었다고 해요. 한·중·일 중 한국이 최초이고 본초강목에 기록된 바로는 '신라의 깊은 바닷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따온다 4월 이후로는 대어가 나타나 해치기에 채취할 수가 없다'라고 전하고 있어요.

 

김밥 사진입니다 당근과 시금치,계란, 참개 등의 재료를 넣고 만든 김밥입니다.김을 굽고 있는 중입니다 김에 들기름을 바르고 팬위에서 굽고 있는 사진입니다.

 

김 양식

'김 양식은 1424년 집필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김 양식의 기원이 나타난다' 약 260년 전 한 할머니가 섬진강 하구에서 패류(재첩?)를 채취하였다고 해요.

 

김이 많이 착생한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붙어 있는 김을 뜯어먹어 본 즉 매우 맛이 좋아서 그 후 죽목(竹木)을 수중에 세워 인공적으로 김을 착생시킨 데서 비롯되었다.

 

김은 종이 형체로 만들어져 임금님께 진상되고 효종 때엔 김 진상에 백성들의 고통이 따르니 봉진(封進) 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 기록되어 있어요.

 

동국세시기(19세기)에는 김과 말린취 배춧잎 등으로 밥을 싸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옆나라 일본도 김소비량이 높은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도 김을 좋아했다고 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시나가와(品川)와 오오모리(大森)의 어부들에게 생선을 진상하도록 명령했다고 해요. 날씨가 좋지 못할 땐 어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물고기 진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어부들이 머리를 쓴 것이 해안가에 활어조를 만들어 비상시를 대비 물고기들을 채워 놓았어요

 

그런데 활어조에 김(海苔)이 붙었던 모양입니다. 물고기들을 가둬 놓기 위해 나무로 울타리를 쳐놨는데 김이 붙어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죠.

 

더 많은 김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논에 벼를 심듯 오오모리와 시나가와 해변에 나뭇 가지들을 심어 채취할 수 있었어요. 생산된 김은 막부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었고 참근교대(볼모)로 에도에 머물던 사람들에 의해 특산품이 되어 전국에 소개되었어요.

 

먹고살 것이 없게 만든 살생 금지

흥미로운 사실은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의 살생 금지령(1685)이 사각 틀에서 만들어지는 김을 최초로 발견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살생금지령은 해를 넘길수록 강화되어 어부들의 목숨줄인 물고기까지 잡을 수 없게 되었어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어부 노구치 로쿠로자에몬(野口六郎左衛門)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 상품이었던 김으로 눈을 돌렸어요.

 

어느 정도 인기였냐하면 현재 우리나라 조미김과 비슷했을 것 같기도 한데요 다만 기존의 모양보다 반듯하게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고 해요.

 

사각모양, 종이 제작 방법을 김에 도입했다고 해요. 제지업이 발달한 아사쿠사(浅草) 지역에서 종이 만드는 방법은 물에 불어난 섬유나 나무를 사각 틀에 넣고 손으로 뜨는 방법(수부지)으로 만들었는데요 종이대신 사각김을 만들어 낸 것이죠.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균일한 모양의 사각 김이라 아사쿠사(アサクサノリ) 김으로 명령되어 에도의 인기 특산품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팔려 나갈 수 있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