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받아들이다 수타 소바의 부활
본문 바로가기

소바 이야기

전통을 받아들이다 수타 소바의 부활

예쁜 꽃을 피우는 메밀은 일본어로 소바에요. 메밀국수를 말할 수도 있고 추수한 메밀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장에서 제분된 메밀가루를 뜻하기도 해요. 글자로 쓰일 때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뭉뚱그려 말할 수 있어요. 소바는 어떤 물건이었길래 일본에서는 몇백 년을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일까 궁금해졌어요.

 

안경쓴 남자가 흰색의 요리사 복장으로 국수를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소바의 영양과 부활 귀족이 품은 패스트푸드 

우리나라는 메밀국수를 더 일찍부터 먹었을 거에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두 나라에서 메밀과, 소바의 위치는 달라졌죠. 만드는 사람도 그렇고 먹는 사람 숫자에서도 차이가 나요. 현재 나가노는 옛 신슈로 불렸어요 소바가 흥한 동네죠. 메밀이 집결하는 장소였고 산지였다고 해요. 일본 3대 소바 중 토카쿠시소바도 신슈 현 나가노에서 만들어졌어요.

 

소바를 다 먹고 면 끓인 물을 소바유라고 하는데 신슈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냉면으로 보면 면수죠. 현재로 봤을 때는 별거 아니지만 당시에는 아주 신선한 문화가 되었다고 해요. 유행은 신슈에서 에도로 옮겨가며 꽃피우기 시작했어요.

 

현재 일본 수도 도쿄의 옛 이름이 에도였어요. 당시에도 큰 도시였죠. 사람들이 많았던 에도는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해요. 엄청난 화재가 여러 번 일어나고 지진, 태풍, 전염병 등 자연재해와 인재로 인한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어요.

 

도시를 재건하려면 사람이 필요했는데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햇어요. 노동자들의 숙소와 먹거리 등의 산업이 발달하게 되고 그중 서민들의 뱃속을 담당했던 음식이 소바였다고 해요.

 

막부에서는 서민들의 음식이라 그랬던 것인지 소바의 기본적인 가격을 조정했어요. 현재의 가솔린 값처럼 널뛰지 못하게 가격을 고정시켜 놓은 것이에요.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곤욕스러웠겠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소바만 먹으면 질렸을 거에요. 대신 '쌀밥 먹지 뭐!' 할 수도 없었던 시기였어요. 아시다시피 옛날에는 잘 먹을 수 없었죠.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본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잡곡밥 한 가지와 반찬 하나였다고 해요. 에도시대가 되면서 외식시장이 생겨난 것이지 그전까지만 해도 외식은 없었고 거의 집에서 먹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그래서 메밀은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고 먹는 법과 기술이 쌓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죽이나 수제비보다는 국수 모양이 먹기 좋았을 거에요.

 

당시 에도시대 인구가 백만이 넘었을 때가 있었다고 해요. 현재로도 따져보면 큰 도시인데요 미국의 서부 금광처럼 노동자들과 그에 따른 장사치들 술집 종업원들이 몰려들었던 것이죠.

 

에도의 인구 증가에 어쩔 수 없이 보탬이 되었더 귀족과 무사들도 있었어요. 그들도 외식이 낯설었다가 일정기간 에도에 머물러야 하는 법(참근교대)으로 인해 외식 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악법이었던 참근교대는 지나고 보니 순기능도 있었다고해요. 전국에 돈이 돌게 만든 거죠. 가령 부산에서 광주를걸어간다고 생각해 보면 중간에 숙박도 해야 하고 밥도 사 묵고 경찰 서장과 목욕도 해야하죠. 돈이 돌 수 있었어요.

 

꺼꾸로 지방 음식들이 에도에 모일 수도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수타 소바 기술 발전에도 기여했을 거에요. 국수로 만드는 방법이나 삶는 법, 제분의 발전이 맛에 이르기까지 했을 거에요.

 

개중에 손재주 있는 사람들로 인해 패스트푸드화도 빨라졌을 거에요. 불도 피우지 못하는 포장마차에서 빠르게 국수를 팔 수 있었던 것도 머리를 짜내야 그럴듯하게 팔 수 있었을 거세요.

 

현재와 같은 수준의 맛은 절대 아니였겠지만 미지근한 물에 담궜다 뺀 소바라도 당시에는 특별하고 먹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당시 소바 포장마차의 준비를 보면 집에서 소바를 만들고 상자에 담아 수분이 날아가지 못하게 천으로 덮고 쯔유와 뜨거운 물을 싣고 이동한 후 포장마차를 편 것이죠.

 

이런 것이 바탕이 되어 냉동우동과 컵라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일본인들의 국수 사랑도 소바에서 우동 라멘으로 이어지는데요 만드는 기술이 좋아질수록 인기도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