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에서 도쿄까지 시대 변화를 통한 요리 탐험 ft. 츠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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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 이야기

에도에서 도쿄까지 시대 변화를 통한 요리 탐험 ft. 츠쿠리

에도(도쿄) 시대 후기에 들어서며 사시미야(횟집)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해요. 포장마차에서도 생선회를 팔았는데요 그곳의 주력 상품은 참치나 가다랑어 회였어요. 서민들이 주로 먹는 생선들이었다는 거죠. 길거리 포장마차의 생선회는 당시 일본 백과사전에서 언급할 정도로 질이 떨어졌다고 해요.

 

생선회와 생선살을 이용해서 일본 음식 스시 한 접시가 식당 테이블 위에 있는 AI 그림입니다. 노란색과 녹색등을 섞어 스시 한접시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스시 주위로 레몬과 국물 물 주전자등이 있습니다.

 

kansai 간사이 간토 kanto

생선의 품질에 관해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간사이 쪽과 간토 쪽 생선회의 품질은 어떠했는지 궁금한데요 당시 사람들은 간사이 쪽 횟집이 맛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간사이 쪽에서 보는 에도는 하룻강아지였을 테니 당연하다 생각했을 것이고 에도에서는 또 '신생 도시이니 어쩔 수 없다' 하며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에도의 플레이팅과 칼질등이 더 좋았다는 거죠. 요리 중심지로 급부상한 에도가 고정관념에 도전한 셈이된 것이죠.

 

당시의 기록(수정만고 守貞謾稿)에 따르면 신생 도시 에도쪽의 칼질이나 담음새가 정교해서 좋다는 기록이에요. 뭔가 승리자의 역사만 전해지는 느낌도 있지만 당시 100만 인구의 도시 에도를 상상해 보면 그러고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일본의 간사이는 교토에서 오사카까지 뻗어 있는 서쪽 지방을 이야기하고 간토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지방을 가리켜요. 참고로 도쿄라는 이름은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며 사용하게 되었어요. 메이지 유신은 에도에서 도쿄로의 전환을 의미하게 되었어요.

 

에도는 큰 도시로 성장했었죠. 막부의 도시 재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그로인해 자영업자의 성장이 이뤄지면서 외식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인기 메뉴였던 초밥(에도마에 스시) 는 손으로 집어먹었다고 해요. 포장마차에서 파는 소바는 찍어먹는 방법과 뿌려 놓은 국물 때문에 젓가락을 사용했고요. 나무로 만들어진 젓가락은 1회용이 아니었고 씻고 재 사용했다고 해요.

 

생선회는 개인 접시를 가져가 담아 먹기도 했던 모양이에요. 손이나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생선회라고 부르는 사시미는 일본어로 찌른다는 뜻을 갖고있는데요 사시미는 주로 교토와 오사카 쪽에서 불렀던 이름이래요.

 

간사이 쪽 지방에서 부르는 사시미라는 말을 에도에서는 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작동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츠쿠리(つくり)로 바꿔 불렀다고 해요.

 

미묘한 경쟁 구도의 간사이와 간토를 보면 같은 음식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예가 꽤 있는 거 같아요. "만들다"라는 뜻에 '츠쿠리'는 현재 유명무실하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츠쿠리로 부르는 것이었다고 해요. 사무라이들이 칼을 들고 다니는 시기였기 때문에 찌른다는 뜻에 음식은 별로 탐탁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