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부소바의 시작! 원조는 츠타야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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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 이야기

야부소바의 시작! 원조는 츠타야소바

야부소바, 스나바, 사라시나, 잇사안 등 소바를 만드는 소바장인에 의해서 또는 유명한 가게들의 이름이 대대로 내려오며 계열화되었습니다. 그중 야부소바(츠타야 蔦屋)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얼마 큼의 시간이 소요될까요? 음식마다 다르겠지만 주문한 사람들의 공통된 시각은 빨리 나오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닿아있을 것 같습니다.

 

에도시대 soba를 파는 방법은 만들어 놓거나 바로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둘 중에 맛으로 치면 바로 만든 것이 맛있다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들고 다니며 팔았던 포장마차 소바는 술집 근처에서 종업원들이나 술 먹고 나오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장사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손님이 주문을 하면 번개 같은 속도로 물에 토렴 후 쯔유와 내었을 것입니다.

 

손님들이 둘러 서서 먹을 수밖에 없는 포장마차는 부피가 크거나 무게가 나가는 것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이유로 소바를 삶는 물을 끓이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소바의 맛은 방금 삶아 낸 면과는 많은 차이가 났을 것입니다.

 

포장마차가 장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소바의 상태가 나빠졌을 것 같은데요 술집이 시작하는 시간과 끝날 때가 포장마차들에 장사 타이밍으로는 딱 좋은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식당도 소바를 삶아 놓았을 까? 궁금한데요 에도시대 그림들을 봤을 때 규모가 있는 점포에서는 바로바로 삶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스나바소바와 사라시나 소바는 역사가 오래된 일본의 소바집 야부소바 칸다야부소바 소개

 

츠타야 당대 최고의 소바집!

제가 본 에도시대 그림에 나오는 가게는 츠타야(야부소바)라는 가게입니다. 비탈길에 대나무들이 있고 대나무들에 둘러 쌓인 식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서 바로 만들기도 하고 더 많은 손님들이 밀어닥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만들 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준비해 놓은 유카타가 150개가 모자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 대다수 우동집들이 장사하는 방식은 우동을 삶는 시간이 15분이라고 하면 개점 15분 전부터 우동을 삶아 손님이 점내에 입장해서 빠르게 드실 수 있도록 삶아 놓는 방식입니다.

 

 

 

 

예측해서 조리해 놓는 것이죠. 손님이 없으면 우동을 버릴 수도 있지만 손님들이 빠르게 먹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맞춰진 방식입니다.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와야 이런 방식으로 장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만든 소바의 맛은 당시 맛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서민들이 구경도 못할 큰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가게는 넓기도 넓었을 것입니다. 대나무 덤불과 숲에 둘러 쌓인 가게 가 떠오르는데요. 사람들은 이 가게를 츠타야로 부르기보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야부소바(대숲)로 불렀다고 합니다.

 

 

칸다야부소바 야부소바(츠타야)

 

세이로 소바를 맛있게 만들어 주는 고명!

 

세이로소바를 맛있게 만들어 주는 고명과 그 이유는? (ft. 우동)

에도시대 참근교대(参勤交代)를 정례화한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시기 요리전서(料理全書)의 기록을 보면 소바soba에 곁들이면 좋은 것은 무즙(蘿蔔)과 파, 가쓰오, 겨자, 등이 고명에 좋다고 쓰여

sobakirian.tistory.com

 

TSUTAYA Yabusoba(やぶそば)

그곳의 랜드마크로 가게 이름보다 주위 대나무 숲이 먼저 생각나기 쉬웠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느티나무집이나 은행나무집 이런 느낌입니다.

 

현재도 야부소바 하면 칸다야부가 유명하고 이외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가게들이 일본 각지에 퍼져있다고 합니다.

 

대나무 숲에 둘러 쌓인 덕에 젓가락이며 식당에서 필요로 하는 기물등이 대나무가 많았다고 합니다. 불을 때기 위해서도 많이 사용했겠죠?

 

3대 째인가 당대 최고의 soba집이었는데 갑자기 없어졌던 것 같습니다. 밀어닥치는 인파로 몸살을 앓기도 했던 소바맛집이었는데 말이죠. 오너 리스크였을까요? 노름이나 구설수 높은 사람에게 찍혔을 수도 있고 말이죠.

 

 

 

나머지는 땔감이나 종업원들의 관계였을 것 같은데요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라서 가게가 폐업하는 문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또는 기술자들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서는 분업이 이루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림에 메밀면을 만드는 모습은 나오지 않지만 스나바등의 에도시대 다른 가게들을 유추해 보면 소바장인들도 많아야 했을 것입니다.

 

반죽을 하는 인원과 펴고 자르는 사람들 소바가 만들어지면 삶아야 하는 파트, 서빙 등 종업원들의 수도 손님을 접대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츠타야(야부)의 규모에 맞는 식자재며 사람에 대한 관리를 하려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당시까지 이런 대형 식당을 경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것이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찌 되었든 당시 소바를 만들던 사람 중에 포장마차를 개업. 계속해서 츠타야의 뿌리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현재는 야부소바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의 츠타야가 대단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야부 간판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야부의 특징은 녹색의 소바로 유명한데요 여름에도 햇메밀의 느낌을 주기 위해 개발했다고 합니다.